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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인간의 사고는 더 무뎌지는가? – 사르트르와 하이데거로 본 인간성

by eyesnoise 2025. 4. 29.

인공지능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인간의 지적 능력, 감정, 주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편리함을 누리지만, 동시에 ‘스스로 사고할 필요가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도 함께 품게 된다. 철학자 사르트르와 하이데거는 이 질문에 대해 예리한 통찰을 줄 수 있는 사유의 틀을 제시한 사상가들이다.

 


 

하이데거: 기술은 인간을 ‘수단’으로 만든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20세기 중반 기술 문명이 급격히 발달하는 시기를 관찰하며, 기술이 단순한 도구적 의미를 넘어 인간 존재를 위협할 수 있는 사유 체계라고 경고했다. 그는 기술을 ‘현존재(Dasein)’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보았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기술은 사물과 인간을 ‘자원(resource)’으로 환원시키는 ‘개시 방식’이다.

 

AI 기술 또한 이러한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도구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는 AI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고, 작업을 맡긴다. 그 과정에서 인간 스스로 사유하고 존재를 자각하는 능력은 점차 퇴화할 가능성이 있다. 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의 본질은 “사물의 본질을 가리고, 존재를 은폐한다”는 점인데, 이는 우리가 AI의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될 때 우리의 ‘존재’ 자체가 기술의 하위 요소로 전락할 위험을 시사한다.

 


 

사르트르: 인간은 본질 없는 자유로운 주체다

 

반면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을 자유로운 주체, 즉 자기 삶의 의미를 선택하고 창조하는 존재로 보았다. 그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하면서, 인간은 정해진 목적이나 기계적 구조가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유 속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체할 수 있을까?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보면, AI는 사고를 ‘계산’할 수는 있지만 ‘의미’를 창조할 수는 없다. 인간만이 상황 속에서 고뇌하고, 망설이고, 책임을 지며 자신만의 실존을 구성한다. 오히려 AI 시대에 인간은 더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의 무게’를 더욱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는 기술의 발전보다 더 근본적인 위협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를 경계했다. 다시 말해, AI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사고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사고는 무뎌진다.

 


 

무뎌지는 사고, 원인은 기술인가 인간인가?

 

이제 질문을 되짚어보자. “AI 시대, 인간의 사고는 더 무뎌지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기술 탓’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하이데거는 기술이 우리를 자원화할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동시에 그 위험을 자각하는 인간의 존재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기술이 아닌, 기술을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가 문제라는 말이다.

 

사르트르도 같은 맥락에서, 기술 발전이 인간을 덜 사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책임을 회피할 때 사고가 약해진다고 보았다. 결국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자발적 사고 포기와 존재 망각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AI는 정보를 검색하고 정리하고, 심지어 창작물까지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AI는 ‘고통’, ‘책임’, ‘불확실성’을 감당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AI 시대에 살고 있지만, 철학자들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는가? 혹은, 단순히 ‘기능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인간의 사고가 무뎌졌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진짜 기준일지도 모른다.

 


 

 

AI는 인간의 삶을 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바꾸고 있다. 하지만 효율과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생각하는 인간’,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인간’은 다시 들여다봐야 할 가치다. 하이데거가 말한 ‘기술 속의 위험’과 사르트르가 주장한 ‘자유 속의 책임’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한 철학적 나침반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