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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욕망의 시대, 우리는 정말 원하는 걸 원하는가? – 들뢰즈와 라깡이 본 소비사회

by eyesnoise 2025. 4. 29.

 

– 들뢰즈와 라깡이 본 소비사회

 

현대 사회는 흔히 ‘욕망의 시대’라 불린다. 사람들은 매일 SNS 피드를 넘기며 이상적인 삶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지 속에서 ‘나’를 표현하기 위해 물건을 고르고 브랜드를 결정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정말 ‘원하는 것을 원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원하라고 강요당한 것’을 욕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해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Deleuze)와 자크 라깡(Lacan)은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에서 깊이 있게 접근했다. 둘 다 ‘욕망’의 본질을 문제 삼았지만, 들여다보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사상가의 관점을 바탕으로 현대 소비사회를 재조명해본다.

 


 

라깡: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라깡은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désir de l’Autre)”라는 말로 유명하다. 여기서 말하는 ‘타자’는 단순한 다른 사람이 아니다. 사회적 질서, 상징계, 문화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언어와 규범의 구조를 의미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언어와 사회적 기호 체계 안에서 자라난다. 그 속에서 무엇이 ‘좋은 것’, ‘바람직한 것’인지 배우게 되고, 결국 우리는 ‘나의 욕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 명품 가방을 갖고 싶어 한다고 치자. 정말 그것이 기능적이어서일까? 라깡의 이론에 따르면 그보다는 타자가 그것을 욕망하고, 그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인정해주기 때문에 나도 그 가방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사회적 욕망의 구조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대 소비사회는 끊임없이 타자의 욕망을 자극하고, 새로운 결핍을 만들어낸다.

“다음 계절엔 이 색이 유행입니다”, “요즘 핫한 장소는 여기!”, “이걸 쓰면 인싸!”

이 모든 말들 뒤에는 ‘너도 이걸 원해야 해’라는 타자의 명령이 숨어 있다.

 


 

들뢰즈: 욕망은 생산하는 힘이다

 

라깡과는 다르게 들뢰즈는 욕망을 보다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힘으로 본다. 그는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와 함께 쓴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생산이다”라고 주장했다. 라깡이 욕망을 ‘결핍을 메우려는 시도’로 본 반면, 들뢰즈는 욕망 자체가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연결하며 흐르는 에너지라고 보았다.

 

들뢰즈는 현대 사회가 인간의 욕망을 일정한 틀 속에 가두는 ‘억압적 장치’를 만든다고 본다. 즉, 기업, 국가, 제도, 심지어 가족까지도 우리의 욕망을 규격화하고 조절하려 한다는 것이다. 광고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느끼게 만들지만, 사실은 욕망의 흐름을 미리 설정된 루트 안에서만 흘러가게 만든다.

 

그러나 들뢰즈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욕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기준에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나의 욕망이 연결되고 흐르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삶. 욕망의 자동기계, 즉 기존 질서와 전혀 다른 연결과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가능한 것이다.

 


 

소비사회의 우리,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소비사회에서 살아간다. 브랜드는 단지 물건이 아니라 정체성을 상징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구분짓기 위해 무언가를 ‘욕망’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라깡과 들뢰즈의 관점을 통해 보면, 이 욕망은 순수한 개인의 것이 아닐 수 있다.

 

라깡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쫓으며 끊임없는 결핍을 경험한다. 만족은 순간적이고, 곧 새로운 결핍이 이어진다. 반면 들뢰즈는 이러한 욕망의 흐름을 억압하는 대신, 욕망을 탈코드화(decode)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정말 원하는 것을 원하는가? 아니면, 원하는 것을 ‘원하라고’ 배운 것일까? 혹은, 원함 자체가 나의 창조적 생산 행위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욕망은 단순한 소비의 충동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핵심적 에너지라는 것.

 


 

마치며

 

소비는 피할 수 없는 현대인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의 욕망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되묻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다. 라깡은 우리 안의 결핍 구조를 통해 욕망을 설명했고, 들뢰즈는 욕망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 생산의 힘임을 말한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때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걸 원하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자주 되새겨야 할 철학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