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기이해나 심리 건강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감정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처음엔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그저 하루의 기분을 적는다고 해서 무슨 변화가 생기겠냐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주변 지인 중 몇몇이 감정일기를 꾸준히 쓰면서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한 번쯤은 진지하게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감정일기 쓰기는 지금까지 약 세 달간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보다 훨씬 큰 도움”이었다.
내가 처음 감정일기를 시작할 때는 특별한 양식 없이, 그날 느꼈던 기분을 최대한 솔직하게 써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오늘 좀 무기력했다”, “회사에서 상사 말투가 거슬려서 속상했다” 같은 문장으로 시작해,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그 감정이 내 하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덧붙이는 방식이었다. 때로는 단 몇 줄밖에 안 될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수필처럼 길게 써내려간 날도 있었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었다. 꼭 매일 쓰려고 강박을 가지기보다는, 최대한 자주, 솔직하게 내 감정을 마주하려 노력했다.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감정 인식 능력이다. 전에는 ‘그냥 짜증나’, ‘그냥 기분 안 좋아’ 정도로 넘겼던 감정들을, 감정일기를 통해 ‘내가 왜 짜증났는지’, ‘그 감정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점점 더 잘 파악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상사에게 혼나서 속상한 게 아니라, ‘나는 늘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지적받는 일이 자존감을 건드렸다’는 식의 인식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감정의 구조를 알게 되니까, 괜한 자기비난도 줄고 오히려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변화는 감정의 패턴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감정일기를 꾸준히 써오다 보니, 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예민해지는지,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지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생리 전후로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걸 일기 속 기록들을 통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게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 “아, 지금 내가 예민한 시기구나” 하고 스스로를 좀 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건 진짜 감정일기를 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유익한 경험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감정일기는 나에게 ‘감정 정리의 시간’을 제공했다.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내 기분이 왜 그런지, 왜 이 사람이 밉게 느껴지는지 등을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데, 일기를 쓰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다. 하루의 끝에서 조용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이미 힐링이 되었다. 가끔은 썼던 내용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는데, 며칠 전에 내가 울고 불고 했던 일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감정이라는 건 지나간다는 걸, 나 스스로 체감하며 배워나갔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감정일기에서 똑같은 효과를 느끼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이건 단순히 글쓰기 이상의 도구라는 것이다. 자기이해, 스트레스 해소, 감정 통제력 향상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감정일기는 굉장히 유용했다. 나처럼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거나, 이유 없이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추천하고 싶다.
요즘은 간단한 이모지나 감정 스티커로 그날 기분을 체크하는 앱들도 많고, 종이로 나오는 감정일기장도 예쁜 게 많다. 꼭 거창하게 쓰지 않아도 된다. “오늘 하루 중 가장 좋았던 순간”, “가장 불편했던 일”,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간단한 질문들에 솔직하게 답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돌아보는 습관이 생기고, 그것이 쌓여 자존감 회복과 마음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결론적으로, 감정일기 쓰기는 ‘감정을 적는 사소한 습관’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자신과 친해지는 가장 쉽고 진솔한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의 감정에 더 민감하고 섬세하게 반응하게 되고, 더 건강한 마음을 만들어가는 데 큰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감정일기 쓰기를 추천한다. 당신의 하루와 감정, 그리고 당신 자신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는 계기가 되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