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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허무함을 느낄까?” – 사르트르와 현대인의 실존적 우울

by eyesnoise 2025. 4. 21.

20세기 철학사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사상가 중 하나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실존주의’라는 이름을 대중화시킨 인물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학가, 극작가, 정치활동가였던 그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와 책임, 고독을 진지하게 통찰했다. 그의 핵심 사상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바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

 

그렇다면 이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또, 그가 말한 실존이란 무엇이며, 왜 현대 사회 속 개인에게 여전히 유효한 철학적 메시지로 남아 있는 걸까?

 


 

1.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실존주의’는 19세기 키르케고르, 니체를 기점으로 시작되어 20세기 사르트르와 카뮈, 하이데거 등에 의해 발전한 철학 흐름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과 그 조건을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개인의 삶을 통해 탐색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존주의는 인간을 단순히 ‘이성적 존재’로 보지 않고, 고뇌하고 선택하며 책임지는 존재로 본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특히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분류된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정의해야 하며, 이는 곧 절대적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뜻한다.

 


 

2.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먼저 존재한다

 

사르트르의 가장 유명한 명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만든 도구, 예를 들면 ‘연필’이나 ‘컵’은 만들어지기 전부터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가 결정되어 있다. 그것들의 ‘본질’이 먼저 정해진 후에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태어난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어떤 본질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먼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존재)**이고, 이후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해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 어떤 고정된 목적이나 의미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행위 그 자체로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3. 자유의 무게와 책임의 그림자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은 인간은 완전히 자유롭다는 데 있다.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절대적 기준이나 도덕, 운명에 의지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선택으로만 존재를 완성해나갈 수 있다. 그는 이를 “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자유는 단순히 해방감을 주는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때로 무겁고 고통스러운 책임을 수반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아무도 대신 책임져줄 수 없으며, 그 어떤 외부 탓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실존주의가 말하는 인간 조건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인간을 두고 “자신이 행한 선택의 총합”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회, 특히 전쟁과 죽음, 허무함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전쟁이라는 절대적인 혼돈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선택해야 했고, 그 선택에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4. 타인의 시선과 자기 존재: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또 다른 대표 개념은 바로 “타인은 지옥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는 문장이다. 이 말은 그의 희곡 『닫힌 방(Huis Clos)』에서 나온 구절로 자주 오해되곤 한다. 그는 타인을 혐오하라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인간은 객체가 되어버리며,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존재가 해석되거나 규정당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싶지만, 타인의 눈길은 나를 ‘객관화’하고 ‘정형화’한다. 이로 인해 자유롭고자 하는 인간은 또다시 타인의 시선 속에서 억압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SNS 속 타인의 ‘좋아요’나 평판, 시선에 의존하면서 자기 존재를 규정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사르트르가 경고한 “지옥”에 다름 아니다.

 


 

5. 실존주의의 문학적 실천

 

사르트르는 철학자이자 소설가, 극작가였다. 그의 사상은 단지 이론에 그치지 않고 소설과 희곡을 통해 ‘살아있는 철학’으로 구현되었다. 대표작으로는 『구토(La Nausée)』, 『닫힌 방(Huis Clos)』, 『자유의 길』 등이 있으며, 그는 이러한 문학 작품들을 통해 인간 내면의 불안, 고독, 자유의 책임, 실존적 결단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

 

『구토』에서 주인공 로칭탕은 일상 속 사물의 무의미함, 존재의 무거움을 견디지 못해 구토를 느낀다. 이는 존재 자체의 무게와 허무를 상징하며, ‘삶의 의미는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는 실존주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6. 사르트르의 유산과 오늘날의 의미

 

사르트르의 철학은 단순한 사변적 개념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실천의 철학이다. 그는 철학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보고, 전쟁 중에도 행동으로 철학을 증명하려 했으며, 나중에는 정치적 참여를 통해 인간의 자유를 위한 실천에도 나섰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 고민하는 모든 순간에 사르트르의 말은 유효하다. 그 어떤 정답도 보장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자유에는 책임이 따름을 기억해야 한다.

 


“너는 네가 만든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이런 선언을 남겼다. 외부의 규정이나 사회적 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주의의 핵심이며, 여전히 우리에게 던져지는 가장 급진적이고도 인간적인 메시지이다.